'형상과 글' 카페 요한 계시록 한글주해
김창호님 글
1. 나는 어린양이 일곱 봉인들 중 하나를 떼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천둥같은 소리로 "오라"하였다.
2.그리고 나는 보았다. 보라, 흰 말이 있는데 그 위에 탄자가 활을 가졌고, 그에게 면류관이 주어져 있었으며 그는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하였다.
*먼저 우리는 요한이 영 안에서 보았던 것을 보아야 한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해오기 전에 먼저 와서 세상 나라를 차지한 자가 있다. 이들은 "나"(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나)보다 먼저 온 절도요 강도다. 네 생물중 하나가 그 하나를 불러내었는데 흰 말을 탄 자다.
*흰 말
흰 말은 첫 사람이 지향하는 평화다. 그러나 그 위에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쏘아 죽이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첫 사람이 이루는 세상의 평화는 폭력 아래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첫 사람은 평화의 가치 아래 폭력을 행사한다. 그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평화의 언약은 무지개다. 그러나 첫 사람은 무지개 모양을 가진 활을 들고 나가 폭력을 휘두른다. 첫 사람의 평화는 활을 가진 자의 군림이요 억압이다. 활을 가진 자는 지배자가 되고 활을 갖지 못한 자는 피지배자가 되어 세상의 평화를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는 하나됨의 평화가 아니다.재배자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 지속되는 잠시 동안의 생존의 평화다. 그러므로 이 평화는 힘의 지배를 꿈꾸는 다른 도전자들에 의해 언제나 깨어진다.
그러면 첫 사람의 평화를 추구하는 그 흰 말의 정체는 무엇인가. 흰 말은 첫 사람의 선악관을 좇아서 추구하는 자기 선이다. 흰 말을 탄 자는 자기 선을 폭력을 통해서 이루고자 한다. 흰 말을 한 자의 자기 선은 인류 역사의 초기에 등장하여 면면히 그 힘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와 윤리의 도덕과 사회정의 등등이다. 종교가, 도덕가, 사상가, 등은 칼을 들지 않은 평화주의자다. 그러나 그들은 활을 들고 있다.
활이란 무엇인가. 창세기의 니므롯은 여호와 앞에 강력한 사냥꾼이라 하였다. 니므롯은 흰 말을 타고 활을 들고 최초의 바벨론을 세운자다. 이것은 징조다. 즉 종교가, 윤리가, 도덕가, 사상가 등은 평화란 이름의 활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강력한 사냥꾼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이 사냥당하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흰 말을 탄 자는 인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축하고 있으므로 모든 우상 중에 으뜸이다. 머리의 우상이다. 다니엘서의 사자다.
3. 그가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나는 둘째 생물이 "오라"말하는 것을 들었다.
4. 그러자 다른 말이 나오는데 붉은 말이었다. 그 위에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평화를 제하여 버리며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하였고 그에게 큰 칼이 주어져 있었다.
*붉은 말
붉은 말은 피 흘림을 가리키고 있다. 전쟁도 그 하나일 뿐이다. 첫 사람의 욕심은 어디서나 피 흘림을 일으킨다. 붉은 말을 탄 자는 언제 어디서나 살육을 행할 큰 칼을 받았다. 사람들은 흰 말을 탄 자 아래서 억압된 평화를 유지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큰 칼을 든 자가 나타나서 그들과 싸워 지배권을 획득한다. 인간의 지배 욕망은 한이 없어서 흰 말을 탄 자이건 붉은 말을 탄 자이건 서로 부딪치고 싸운다. 한 쪽은 지식을 들었고 한 쪽은 무기를 든 것이 다를 뿐이다. 칼을 든 자는 활을 든 자처럼 평화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생존 경쟁이라 하며 칼을 공공연히 휘두르며 사람들을 죽이고 두렵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두 번째 우상이다. 가슴의 우상이다. 다니엘서의 곰이다.
5. 그가 셋째 봉인을 떼실 때에 나는 셋째 생물이 "오라"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보라, 검은 말인데 그 위에 탄 자가 저울을 가지고 있다.
6.나는 또 네 생물 사이에서 나는 듯한 음성을 들었는데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하지 말라"하였다.
*검은 말
검은 말은 풍요속의 결핍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것 같은데 모두가 기근을 당하고 있다. 검은 말을 탄 자가 저울을 가졌으니 모든 것이 저울질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모두 숫자로 표시된다. 모든 가치의 중심이 소유다. 종교도, 도덕도, 윤리도, 무력도, 권세도 모두 가진 자에게 지배당한다. 가진 자는 무엇을 가졌건 그 가진 것이 집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울을 가지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 달아보고 평가하며 거래한다. 그들은 최소 일곱 배나 여덟 배의 이익을 남기지 않고는 밀 한 되, 보리 석 되를 팔지 않는다.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 시키는 자가 검은 말을 탄 자다. 검은 말을 탄 자는 저울질이 그 삶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함을 면한다. 이는 야웨의 길과 우리 하나님을 향하여 대로(大路)를 걷는 자에게 어린 양의 은혜와 진리가 드리우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자녀의 영과 생명을 해할 수 없다. 검은 말은 육신의 생존을 으뜸으로 하는 세 번째 우상이다. 그것은 배의 우상이다. 다니엘서의 표범이다.
7.그가 넷째 봉인을 떼실 때에 나는 넷째 생물이 "오라"말하는 것을 들었다.
8. 그리고 나는 보았다. 보라, 청황색 말인데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며 음부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땅 사분의 일의 권세가 주어졌는데 칼과 배고픔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고 있었다.
*청황색 말
청황색은 죽음의 색깔이다. 네 번째 말은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다음에 나오면 앞의 세 말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다. 청황색 말을 탄 자는 칼과 저울과 사망과 짐승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청황색 말은 머리의 우상, 가슴의 우상, 배의 우상이 하나로 결합된 네 번째 우상이다. 다니엘서의 두렵고 놀라운 짐승이다.
*땅 사분의 일의 권세
흰 말을 탄 자는 처음에 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청황색 말을 탄 자는 그것을 짐승으로 바꾸었다. 그는 칼과 저울과 사망고 짐승으로 땅의 사분의 일의 권세를 받아 그들을 죽인다. 이 모든 일은 육신의 첫 사람의 욕심을 좇아 사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머리의 우상은 짐승으로, 가슴의 우상은 칼로, 배의 우상은 기근으로 이 세상 우상을 합한 네 번째 우상은 죽음(질병)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요한계시록은 첫 사람은 누구든지 우상을 섬기며 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머리의 지식을 좇고, 가슴의 욕심을 좇고, 배를 채우고자 먹거리를 좇고, 또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사망을 좇은 것이 첫 사람의 세상이다. 어린 양이 봉인을 떼어 주신 것은 이 에클레시아로 하여금 이 우상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의 실존으로 살라 함이다.
*네 우상과 네 생명
네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린 양의 네 생명으로 부활한다. 그들은 세상에서 약육강식하는 사자에서 세상을 이기는 사자로, 남의 피를 흐리는 곰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는 송아지로, 먹거리를 움켜쥐기에 신속한 표범으로부터 긍휼의 인자로, 멸망을 일으키는 무섭고 놀라운 짐승으로부터 모든 것에서 자유 초월하는 독수리로 부활한다.
에클레시아가 세상을 이기는 사자가 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섬김의 송아지가 될 때 아버지의 나라가 임해오고 긍휼한 인자가 될 때 아버지의 뜻은 땅에서 이루어지고 육신의 첫 사랑을 초월하는 독수리가 될 때 하나님과 화평하며 그와 하나가 된다.
9.그가 다섯째 봉인을 떼실 때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10.그들은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어느 때까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돌려주지 아니할 것입니까"하였다.
11.그러자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리가 주어졌고 또 지시를 받기를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해 그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 하였다.
*네 우상을 못 박은 자는 어린양의 네 생명으로 부활한다. 어린양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아난 것 같이 먼저 모두에게서 네 우상이 못 박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무엇을 호소하고 있는가. 첫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복수인가. 그들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같다. 그들이 바라는 바는 그들이 피 흘리며 증거하던 그것이 속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네 우상을 못 박을 뿐 아니라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할 그들의 동무들과 형제들이 남아있다. 누구든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는 이미 부활의 실존이므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뻐한다. 그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는 영혼들은 하루가 천년 같아서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며 아버지께 호소한다. 이 기다림을 아는 자마다 자기의 일을 지체하지 아니한다. 그는 자기 일을 지체할 수 없다.
12. 그가 여섯째 봉인을 떼실 때에 나는 보았다. 보라, 큰 진동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었다.
13.그리고 하늘의 별들은 마치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듯 땅에 떨어졌다.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웠다.
15.그러자 땅의 임금들과 큰 자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세력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들이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말하기를, "우리 위에 무너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겨다오.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왔으니 누가 대항할 수 있느냐"하였다.
*큰 진동은 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첫 사람의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진동한다. 에클레시아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오려면 먼저 그 안에 있는 세상나라가 떠나가야 한다. 세상나라를 떠나보내는 것이 큰 진동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해오기를 바라지만 그들의 세상나라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그 세상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는 세상나라가 광야가 되고 사막이 되는데서 시작된다. 첫 사람의 하늘과 땅이 먼저 떠나가지 아니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여 오지 아니한다.
첫 사람의 해(지식)는 검어지고, 그들의 달(자기 믿음)은 피같이 되고, 그들의 별들(소망)은 땅에 떨어진다. 그들의 하늘(인간 가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그들의 산(義의)과 섬(善선)은 제자리에서 옮기운다. 그러자 땅의 임금들과 큰 자들(흰 말을 탄자들)과 장군들(붉은 말을 탄 자들)과 부자들(검은 말을 탄 자들)과 세력자들(청황색 말을 탄 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들(네 우상의 추종자들)이 굴(자기 방어)과 산 바위틈(자기 의)에 숨는다.
첫 사람의 세상에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거절한다. 이는 그들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는 건널 수 없는 큰 구렁이다. 여섯째 인봉이 떼어지면 우상을 좇는 자와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나누인다.
*7장에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그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일이 계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일은 이미 어린 양이 첫째 인을 떼신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양이 봉인을 떼시는 것은 에클레시아에게서 첫 사람의 세상을 해체하는 것이요,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것은 둘째 사람에게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아버지의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를 좇아서 오고 있다. 알파는 세상나라의 해체요, 오메가는 인침으로 오는 아버지의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