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뮈토스와 로고스'
- 김 창호
6. 이야기의 원형 -에덴 이야기
창세기 1장은 7일 창조설화로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창조설화는 성서 이야기의 제 일 원형이다.
창조설화의 이야기 방식은 성서 전체 이야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다.
성서의 모든 이야기 구성에는 창조 이댜기가 서사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이는 히브리인들 이야기 구성방식의 제 일 원형이다.
창조설화가 모세에 의해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가설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성서 이야기의 제 이 원형은 에덴 이야기다.
이 역시 모든 성서 이야기의 서사구조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어 있고 스며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무의식에 투영되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이해하는 것은 성서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원형적 이야기를 이해하면 그것에 의한 변주된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이야기로 구성된 이야기 모음집이다.
내러티브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성서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인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거기가 어디든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언어는 있되 문자와 종이가 없던 시절, 공동체의 전통을 유지하고 관습을 전승하는 가장 원형적인 방식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어야 전승 가능하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소멸되기 쉽상이다.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생명력이 없다.
하여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꾼에 의해 초월적 요소가 가미되게 마련이고 극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법이다.
이야기는 이야기꾼에 의해 가감되면서 오랜 전승 과정을 거쳐 이야기의 완성도는 높아가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떠돌던 이야기중 살아남은 이야기는
부족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같이 경전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를 전승하고 보존하는 각 시대의 영성가들에 의해 채집되고
수정 편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 개인의 삶을 되돌아봐도 수많은 이야기로 응집되어 있고 점철되어 있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의 이야기들을 넘어 마침내 진주처럼 빛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고 싶은 게 인생이고
그것이 존재로 드러나게 될 때, 그 이야기는 신성의 빛이 서리게 된다.
얼이 서려 있는 이야기가 된다는 말이다. 마침내 누군가에게 읽히는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전승되며 영존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성서의 정통성은 유기적 영감설이나 축자 영감설이라는 신학적 호교론에 의해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승된 이야기는 그것만의 독특성과 생명력이 있게 마련이다.
그 시대의 이야기 방식으로 오늘의 독자와 호흡한다.
처음에는 신학적 편견을 가지고 텍스트를 마주하더라도 점차 그 편견을 내려놓고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독자와 텍스트가 순수하게 마주할 때, 성서의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발언하게 되고 독자는 거기서 정면으로
옛사람들의 숨결을 만나게 된다.
언제나 그러하듯, 텍스트는 그를 마주하는 독자의 상태만큼만 발언한다.
이야기는 내용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생성될 당시 존재한 옛사람들의 숨결이다.
이야기는 단순히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속엔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예지를 전승하는 것이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야기는 비유와 비사(격언)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데, 의식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일들을
이야기로 남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사의 방식을 띠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 설화는 결코 물리적 창조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근동에 산재해 있는 여러 창조 설화 중 모세 오경의 편집자에 의해 채수되어 편집되고
후대에 전승되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물리적 창조 이야기 방식을 비유하여 그려낸 의식의 심연에서, 그리고 그 심연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장자의 대붕(大鵬)과 같은 비사(秘事)로 펼쳐지는 창조 이야기다.
성서를 어떻게 그러한 관점으로 볼 수 있을까?
성서의 다른 수많은 이야기 속에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고,
그 이야기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의식의 심연을 여행하며
그 심연을 넘어서는 이야기임을 역으로 설명해준다.
성서의 이야기 제 일 원형이 창세기1장 창조 이야기라면, 제 이 원형은 에덴 이야기다.
성서의 다른 이야기들이 이를 허다히 증언한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팩트)로 읽으려 한다.
거기엔 신을 찬양하고 은총을 구하기 위한 박수부대의 외침만 있을 뿐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옛사람들의 지혜와 존재이 소리는 듣지 못한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