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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걷고 있는가?

                                                    조도재  

 

 

3. 모세의 제자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냐

 

기록된 바, "그들이 그를 욕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그( 예수)의 제자이나 우리는 그 모세의 제자들이다." 하였다.

여기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며 당신은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다가 예수께 고침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우리가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모세의 제자는 알파요 예수의 제자는 오메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전혀 그 일을 알지 못했다.

예쑤의 제자는 율법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으로 옮겨왔으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자신들의 권세와 교리로 바꾼 자들이다.

모세의 제자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는 예수께 옮겨와서 그의 제자가 되어야 죄로부터 해방된다.

누구든지 예수의 제자는 모름지기 율법이나 세상의 법인 알파(죄의 종)에서 진리의 오메가(자유자)로 옮겨 왔다.

알파는 오메가를 위하여 있고 오메가는 알파를 완전케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알파를 움켜쥐거나 거꾸로

오메가에서 알파로 돌아갈 수 없다.

 

비록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그 자신은 메시아(그리스도)를 알았고 또 믿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 시대 다음에 영과 진리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며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였다.

그러므로 모세의 제자는 그의 예언을 따라 반드시 예수의 제자로 유월하는 존재다.

그 일은 거꾸로 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종교인들의 모임)라고 불리는 곳에서 사람의 욕심과 선악지식을 따라

이 일이 거꾸로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먼저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으나

아직 영과 진리 안에서 존재적인 자유자가 될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몽학선생을 그들에게 먼저 주셨다.

몽학선생(파이다고고스)은 어린아이의 선생이다. 즉 하나님은 영과 진리에 대하여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어서

먼저먼저 모세의 제자들이 되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유월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다.

그런데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가 분명해진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지 못하는 자칭 율법 선생들은

여전히 예수의 제자들은 모세의 제자들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자기 믿음으로 땅에서 자기 이익(자기 선)을 좇는 강력한 종교꾼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육신의 자기 믿음을 가진 자는 아담처럼 욕심과 선악지식을 좇아간다.

예나 오늘이나 율법 선생들은 종주들이 되어 그들의 탐심의 눈을 크게 뜨고 모세의 율법 중 다른 것들은 다 버리고

십일조와 안식일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탐심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거스르는 자가 스스로 빠져든 악일 뿐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케 되었다.

완전케 된 것으로부터 불완전한데로 돌아가게 하는 자들이 오늘날의 율법 선생들이다, 

 

이스라엘은 율법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문자로 받았다.

즉 그들은 그들의 영적 미성숙 때문에

그 계명을 영과 진리 안에서 자신들의 실존을 이루는 사랑의 권세로 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 사랑의 계명은 도리어 그들을 더욱 죄인들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바라지는 믿음)으로 영의 생각을 따라 영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지도 믿지도 않았다.

죄사함을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의 기쁘신 뜻을

자기의 기쁜 뜻이 되게 하는 존재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기쁘고 즐거운 권세요

종교인들에게는 지고 갈 수 없는 무거운 짐이요 멍에다.

때문에 종교인들은 사랑의 권세를 버리고 율법 속에서 십일조와 안식일을 찾아내어 기복신앙을 융성케 하며

스스로 불순종의 아들들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나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참 사람의 십일조와 참 신의 십일조를 드린다.

물질의 십일조는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열 개의 소득 중 하나를 드리는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다.

즉 열 손가락으로 얻는 열 개의 소득을 다스리는 온전한 하나의 마음(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십일조다.

우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물질을 다스리는 왕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에 마음이 원하는 데에 물질이 따라간다.

참 사람은 자기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십일조를 드리고 참 신(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십일조를 드린다.

우리의 열 손가락으로 얻는 모든 소득은 마음의 다스림을 받고 그 소득이 우리의 사랑을 따라 쓰이면

그것이 영과 진리 안에서 완전케 된 우리의 권세의 십일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