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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악한 계모의 착한 아들’같은 부하를 둬라
‘후처 콤플렉스’의 경영학
여성학자 나탈리 에니크는 ‘여성의 상태’에서 서구 소설에 나타난 여성상을 분석하면서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50여 편의 서구 문학작품들을 통해 젊은 처녀·노처녀·정부·본부인·어머니 등 다양한 상태의 여성들을 다루면서 ‘후처 콤플렉스’를 규명하고 있다.
에니크에 따르면 후처는 전처(본부인)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부인이지만 전처에 대한 열등감을 공유한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각자의 역할은 각자가 처한 위치나 공간, 시간 속에서 결정된다. 전처와 후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믿고 있는 누군가(후처)가 그 자리는 타인(전처)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혼란을 경험하고 정체성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악한 계모’는 ‘선한 본부인’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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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나 후처는 역할들의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전처와 후처가 경험하는 동일성의 감정은 다른 것이다. 즉 후처는 동일성의 감정에 손상을 입게 되고 동일성의 위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후처는 전처를 밀어내고 본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여기서 작동하는 게 바로 ‘후처 콤플렉스’다.
영국 헨리 8세와 그의 계비들은 ‘후처 콤플렉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 인간적인 애욕의 점철로 인해 영화 ‘천일의 앤’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만들어지기도 했다.
헨리 8세는 정비인 캐서린을 비롯해 앤 볼린과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무어, 캐서린 파아 등 세 명의 계비를 맞았다. 헨리는 앤 볼린과의 결혼을 위해 이혼을 결심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당한 주인공으로 그만큼 역사에 회자되는 영국 왕도 드물 것이다.
그는 네 번 결혼했는데 정비인 캐서린에게서 딸 메리를, 첫 번째 계비인 앤 볼린에게서 딸 엘리자베스를, 두 번째 계비인 시무어에게서 에드워드를 두었다. 헨리 8세에 이어 왕위는 두 번째 계비의 아들인 에드워드에서 다시 본부인 캐서린의 딸인 메리로, 이어 앤 볼린의 딸인 엘리자베스로 계승됐다.
영화 ‘천일의 앤’에서 앤 볼린은 ‘후처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왕의 사랑을 독점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헨리 8세는 앤의 끊임없는 성급함과 과격함을 싫어한다. 급기야 앤은 자기 오빠를 포함해 다섯 명의 남자와 근친상간하고 반역을 조장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앤은 결혼한 지 1000일 만인 1536년 5월 2일 런던탑에 투옥된다. 그녀는 간통·근친상간·반역의 죄로 고발당한다. 헨리 8세는 그녀가 자신에게 아들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결국 이 때문에 앤은 왕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결국 참수를 당하는 비운의 왕비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앤이 왕비가 되면서 정비인 캐서린의 딸 메리는 서출로 신분이 격하되는데 앤이 처형되면서 그녀의 딸인 엘리자베스 역시 서출로 강등된다.
‘후처 콤플렉스’의 핵심은 어쩌면 가부장적인 질서라는 열악한 현실에서 ‘후처로살아남기’라고 할 수 있다. 후처로 살아남기의 핵심은 가부장적이고 신분적인 질서 하에서는 아들의 출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을 낳은 후처는 전처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전처와 동일성을 지닐 수 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 후처는 동일성의 위기, 즉 계모 지위의 위기에 직면한다. 동일성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계략을 쓰기도 한다.
계모의 계략을 주제로 한 고전적인 이야기가 바로 ‘장화홍련전’이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인 허 씨 부인은 아들 셋을 낳음으로써 계모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고 나아가 가족 관계에서 권력을 전횡하게 된다.
물론 ‘장화홍련전’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 속에서 후처의 지위에 대한 상징적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후처라는 지위에서 오는 불안과 불안정을 떨쳐내기 위해 악한 계모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보자면 ‘악한 계모’의 신화는 ‘선한 본부인’을 전제로 하므로 이 역시 강자의 시선과 이념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악독한 계모보다 악한 전처의 자녀도 있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에는 영조 시절 ‘백필랑·필애의 자살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악독한 계모가 아니라 악한 전처의 딸이 등장한다.
즉 전처 소생의 필랑·필애 자매는 자신들에게 자살을 유도한 계모를 때려 죽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나중에 계모는 인자했고, 자매가 오히려 독살스러웠던 것으로 진상이 조사됐다.
여기서 ‘후처 콤플렉스’를 인류문화적 차원에서 한 가지 물음을 던져봄직하다. 즉 후처는 아들을 출산함으로써 자신의 열등한 처지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의 꿈을 대리 충족하려는 욕망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에니크에 따르면 후처의 특성상 스스로 자기가 차지한 지위가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을 결핍한 존재로, 완전하고 꽉 찬 존재가 아닌 타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사랑을 덜 받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에니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모의 자녀가 착하면 ‘악한 계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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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질서는 항렬에서의 질서이기도 하다. 본부인에게 후처는 선점권에서도 빚지고 있다. 결국 열등감으로 자책한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콤플렉스는 열등감을 이겨내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즉 후처는 자신의 시간 속의 질서에서 오는 후처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때 지나치게 아들의 출산과 그 아들을 통한 욕구의 대리 충족에 집착한다면 ‘장화홍련전’과 같은 악한 계모의 신화를 덧칠할 수 있다. 더욱이 악한 계모라는 과잉 이미지는 선한 계모의 자리를 앗아가면서 악한 계모의 신화를 확대재생산한다.
그런데 ‘후처 콤플렉스’에서 중요한 변수는 계모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후처가 그 자리에서 오는 한계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악한 계모의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 자녀가 어머니의 ‘과도한’ 욕망 추구에 동조하지 않고 지혜롭게 처신한다면 악한 계모를 ‘탈색’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가정들의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전처와 후처의 자녀로 이뤄진 가정에서 이복형제·자매간에 유달리 화목한 가정이 있는데 이때 부모뿐만 아니라 자녀 특히 장남이나 장녀가 화목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면 이복형제·자매간에 서로 나뉘어 반목하고 질시하고 서로 증오하기도 한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인 허씨 부인에게 동조하는 아들 장쇠가 여기에 해당한다. 장쇠는 누나를 죽이라는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다.
따라서 어느 조직에서든지 리더는 독단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들면 조직 전체가 위기에 처하고 서로 반목질시하며 증오하는 등 갈기갈기 찢기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 리더에게 유능하고 지혜로운 조력자가 있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리더의 약점까지도 채워 주면서 조직을 건강하고 화합으로 이끌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후처의 살아남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계모라는 핸디캡을 떨치고 자신이 낳은 자식을 통해 욕망을 대리 충족하려는 후처의 눈물겨운 투쟁심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콤플렉스’에서 연유하는 ‘후처의 살아남기’ 전술은 때로 자신의 자녀만을 과도하게 위함으로써 가정을 치명적인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모든 일들에서 예외가 있는데 소서노의 사례다.
전 남편에게서 두 아들을 둔 소서노는 주몽을 만나 사랑을 찾고 야망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주몽이 부여에 남겨두고 왔던 아들 유리가 졸본으로 와 적자로서 고구려 왕위 계승권을 가져가자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하를 결행한다.
비류는 미추홀이란 곳에 백제를 세웠고 온조는 위례성에 십제를 세운다. 두 왕자에게 나라를 세우게 만든 이 역시 소서노였고 두 나라를 합쳐 백제국으로 세운 이도 그녀였다. 이는 후처 콤플렉스가 ‘위대한 콤플렉스’로 전이된 가장 역사적인 사례일 것이다.
바야흐로 이혼이 급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후처 콤플렉스’ 혹은 ‘후처로 살아남기’는 신화로 덧칠된 후처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냉정한 시각으로 접근해 본다면 귀감이 되는 인간 경영학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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